
※ 2026 투자 인사이트 포럼 ‘변화의 시대, 투자의 기준을 세우다’(하나증권·3PRO, 2026년 9월 19일 코엑스) 후기 세 번째 글입니다. 앞서 김대식 교수의 AGI 강연과 거기서 파생된 에이전트 결제 표준을 정리했고, 이번은 김경일 교수(아주대 심리학과) 세션입니다.
강연 제목은 ‘돈의 심리, 행복의 조건’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중 제 필기에 가장 또렷하게 남은 한국인론을 따라갑니다. 요지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혼자 판단하지만, 혼자를 위한 판단은 하지 않는다.
1. 먼저 골라 보십시오
강연 중간에 교수가 청중에게 게임 두 개를 내밀었습니다. 읽는 김에 먼저 골라 보시면 좋겠습니다.
- A — 1억 원을 받을 확률 100%
- B — 1억 원 89% / 5억 원 10% / 꽝 1%
고르셨습니까. 이 문항은 교수가 즉석에서 만든 게 아니라 행동경제학의 고전입니다. 대니얼 카너먼—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 즐겨 쓴 문제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알레의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2. 계산으로는 B가 낫습니다
기대값을 내 보면 답이 명확합니다.
- A = 1억 원
- B = (1억 × 0.89) + (5억 × 0.10) + (0 × 0.01) = 1억 3,900만 원
B가 39%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A를 고릅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실험에서는 82%가 A를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1%의 꽝입니다. 확률로 보면 1%지만, ‘확실한 1억’이 ‘거의 확실한 1억’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전혀 다른 물건이 됩니다. 이걸 확실성 효과라고 부릅니다.
카너먼 이론의 한 줄 요약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획득의 순간에 모험하지 않는다. 잃을 때는 만회하려고 위험을 감수하지만, 얻는 국면에서는 확실한 쪽으로 몸을 웅크린다는 것.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재현되는 결과입니다.
3. 한 나라만 빼고
교수가 전한 카너먼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한국 사람들만 내 이론대로 행동을 안 해?”
한국인은 이 문항에서 B를 고르는 비율이 유독 높다는 겁니다. 그래서 학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오히려 활발해졌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검증이 됐습니다. 교수가 청중에게 거수를 시켰는데, B에 손을 든 사람이 눈대중으로 30~40%는 돼 보였습니다. 정확히 센 숫자가 아니라 제가 고개를 돌려 훑어본 체감입니다. 그래도 82%가 A를 고른다는 실험값과는 확실히 다른 그림이었습니다. 투자 세미나에 온 사람들이라는 표본 편향을 감안해야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적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4. 주체성 — 무시당하면 화가 난다
교수가 든 열쇠말은 주체성이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감각, 주인의식입니다. 강연에서 들은 바로는 이 성향을 국가별로 재면 이스라엘이 1위이고 한국이 그 뒤를 잇는다고 합니다. 2등은 북한이라는 농담도 붙었습니다.
주체성이 강하면 부작용도 뚜렷합니다. 무시당하는 데 유난히 화를 냅니다. 회사에서도 일이 힘든 것보다 나를 건너뛰고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에 더 크게 반응합니다. 한국 조직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상당수가 업무량이 아니라 이 지점에서 터진다는 건,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짚이는 데가 있을 겁니다.
종교를 ‘고른다’는 감각
주체성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보여 주는 예로 교수가 든 것이 종교였습니다. 한국에서 종교는 고르는 것입니다. 살면서 바꾸기도 하고, 갖지 않기로 정하기도 하고, 한 집안 안에서 각자 다른 종교를 갖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나라에서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고르는 대상이 아니라 속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교수가 유학 시절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이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 종교는 뭐였어?”
한국 사람끼리라면 아무렇지 않은 질문입니다. 지금은 안 다니지만 어릴 땐 절에 다녔다는 식의 답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과거형으로 물었다는 건 그 사이에 바뀌었을 수 있다는 전제인데, 그 전제가 통하지 않는 겁니다. 태어난 집안이 무엇이냐를 묻는 말로 들리거나, 더 나쁘게는 실례가 됩니다.
한국인에게는 종교마저 선택지 목록입니다. 주체성이 강하다는 말을 이보다 잘 보여 주는 예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체성이 강한 사람은 남의 말을 안 들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강연은 정반대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5. 훈수의 법칙
사진 한 장이 화면에 떴습니다. 노인 두 분이 장기를 두고 있습니다. 왼쪽 노인은 판에 바짝 붙어 몰입해 있습니다. 오른쪽 노인은 모자를 쓰고 점잖은 차림으로, 조금 떨어져 여유 있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대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가 끼어 앉아 판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완연한 훈수 자세입니다.
교수가 물었습니다. 누가 제일 고수로 보입니까.
한국인들의 답은 어린이라고 합니다. 훈수 두는 쪽이 제일 세 보인다는 겁니다. 그럼 어린이를 빼고 다시 물으면—
- 외국인은 대체로 왼쪽 노인을 꼽습니다. 더 몰입해 있고 열정적으로 두고 있으니 실력자일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 한국인은 오른쪽 노인을 꼽습니다. 여유가 있으니 고수라는 겁니다.
이 차이가 한국인의 일하는 방식을 설명한다는 게 교수의 해석이었습니다. 한국인은 자기 열정과 주변의 훈수를 겹쳐서 씁니다. 스스로 뛰어들어 몰입하되, 옆에서 들어오는 참견을 막지 않고 흡수합니다. 그 조합이 여러 산업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온 동력이고, 다른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견줘 꽤 긍정적인 자산이라는 것.
여기서 4번과 5번이 이어집니다. 주체성이 약하면 훈수는 간섭이 되지만, 강하면 훈수는 자원이 됩니다. 중심이 서 있으니 남의 말을 들어도 휘둘리지 않고, 쓸 만한 것만 골라 쓸 수 있습니다. 무시당하면 화를 내면서 훈수는 기꺼이 받는 모순이 사실은 모순이 아닙니다.
덧붙임 — 훈수가 실제로 더 정확한 이유
이 대목은 강연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뒤에 찾아본 것입니다. 훈수꾼이 판을 더 잘 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라 실험으로 확인된 현상입니다. ‘솔로몬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2014년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연구(Grossmann & Kross)에서 693명을 대상으로 세 차례 실험한 결과, 사람들은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현명하게 추론하지만 같은 문제가 자기 일이 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기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협의 여지를 보고, 상대의 관점을 헤아리는 능력이 남의 일일 때만 올라갑니다.
더 흥미로운 건 처방입니다. 자기 문제를 3인칭으로 놓고 보게 하자 그 격차가 사라졌습니다. 20~40대와 60~80대에서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즉 장기판 옆의 아이가 고수처럼 보이는 건 착시가 아닙니다. 판 밖에 서 있다는 위치 자체가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그 아이가 장기를 둘 줄 아느냐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6. 그래서, 인사를 잘 하십시오
강연의 실천 지침은 뜻밖에 소박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 하라.
훈수는 아무에게나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을 붙일 수 있는 사이라야 훈수가 들어옵니다. 인사를 안 하고 지내면 내 판을 들여다봐 줄 사람이 옆에 없고, 그러면 나는 계속 판 안에만 머물게 됩니다. 관계를 열어 두는 일이 곧 내 판을 봐 줄 3인칭을 확보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인맥을 넓히라는 자기계발식 조언과는 결이 다릅니다.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사람을 만나라는 게 아니라, 내가 못 보는 것을 대신 봐 줄 눈을 곁에 두라는 얘기에 가깝습니다.
7. 행복 — 꼴찌인데, 큰 문제로 삼지 않는다
강연 제목의 뒷단어가 ‘행복의 조건’이었습니다. 여기서 교수가 짚은 대비가 이 글의 마지막 조각입니다.
한국의 행복 지수는 OECD 꼴찌 수준입니다. 그런데 주체성에서는 거의 1등입니다. 그리고 한국인은 그 낮은 행복도를 스스로 위안 삼으며 큰 문제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숫자를 확인해 봤습니다. 2026년 3월에 나온 세계행복보고서 2026에서 한국은 6.040점으로 147개국 중 67위였습니다. 재작년 52위, 작년 58위에 이어 3년 연속 하락입니다. OECD 37개국만 추리면 33위, 교수의 표현대로 꼴찌 수준이 맞습니다.
흥미로운 건 세부 지표입니다. 이 보고서는 1인당 GDP,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인생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 인식 여섯 항목으로 점수를 냅니다. 한국은 1인당 GDP·기대수명·인생 선택의 자유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고, 사회적 지원·관용·부패 인식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 조합을 강연의 틀에 얹으면 그림이 또렷해집니다. ‘인생 선택의 자유’가 높다는 건 주체성이 높다는 말과 거의 같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고른다는 감각은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지원’이 낮습니다. 힘들 때 기댈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한국인은 낮게 답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 고를 힘은 충분한데, 그 선택을 받쳐 줄 사람은 부족하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도 큰 문제로 삼지 않고 스스로 위안합니다. 주체성이 강하다는 건 이럴 때 양날입니다. 버텨 내는 힘이 되는 동시에,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보면 6번의 소박한 지침—인사를 잘 하라—이 빈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이 정확히 사회적 지원이고, 훈수는 그 항목을 늘리는 가장 값싼 방법입니다. 여기서 두 개의 ‘조건’이 만납니다. 돈 이야기로 시작한 강연이 관계 이야기로 끝난 이유도 그것 같았습니다.
8. 정리 — 혼자 판단하지만 혼자를 위한 판단은 아니다
교수가 36년간 인지심리학을 연구하며 내린 결론은, 한국인의 특징이 개인주의도 집단주의도 아닌 관계주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틀로 보면 앞의 조각들이 한 줄에 꿰입니다.
- 왜 B를 고르는가 — 큰돈을 원하는 이유가 나 혼자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까지 잘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켜야 할 범위가 넓으면 1억으로는 부족해집니다.
- 왜 무시당하면 화가 나는가 — 주체성이 강해서입니다. 판단의 주체가 나여야 합니다.
- 왜 훈수를 받아들이는가 — 주체가 나인 것은 흔들리지 않으니, 남의 눈을 빌리는 일이 손해가 아닙니다.
투자 세미나에서 심리학자를 부른 이유도 여기서 짐작이 됩니다. 시장에서 한국인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왜 확실한 수익보다 큰 수익 쪽으로 기우는지, 왜 남의 말에 그렇게 빠르게 반응하는지—는 차트가 아니라 이쪽에 답이 있습니다.
B에 손을 들었던 30~40% 안에 저도 있었는지는, 솔직히 적어 두지 않겠습니다.
※ 강연 내용은 현장에서 들은 것을 제 기억과 필기로 정리한 것이라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가별 주체성 순위는 강연에서 언급된 것으로, 어떤 조사인지는 따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거수 비율 30~40%는 집계가 아니라 제 눈대중입니다. 카너먼의 게임 문항과 확률(89/10/1), 기대값 계산, 세계행복보고서 2026의 순위와 세부 지표, 솔로몬의 역설 연구는 공개 자료로 확인해 보완한 것입니다. 7번에서 행복보고서의 세부 지표를 강연의 틀에 얹어 읽은 대목은 제 해석입니다. 투자 판단을 위한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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